엄카 촛불녀 (F/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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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공무원 집안에서 태어났다. 억압된 문화를 경험한 부모 세대의 욕망을 대리만족 시켜주는 존재였고 때문에 상대적으로 또래 친구들에 비해 많은 문화적인 혜택을 누렸다. 경제적인 능력이 되지 않는 대학생이 되어서도 문화적인 경험을 이어나가기 위해 끊임 없이 부모에게 의지했다. 부모의 돈을 들여 영화를 찍거나 부모의 돈으로 정당에 후원을 하고 또 부모의 카드로 결재한 보호 마스크를 쓴 채 대한문 앞에 서 있거나 하며 20대 초반의 대부분을 보냈다. 어릴 적 부터 지금까지의 나의 모든 문화적 취향과 정치적 투쟁은 모두 부모의 주머니에서 나왔다. 하지만 20대 중반이 된 지금 나이든 부모의 경제적 활동이 중지된 상태이고 본가의 경제적 상황은 점점 내리막 길이다. 하고 싶은(하지만 돈이 되지 않는) 공부가 아직 많이 남았으나 공부나 문화적 경험은 커녕 당장의 먹고 살 일이 시급하다. 평생 동안 부모가 보여준 무대와 서사와 시인들은 모두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으라'고 가르쳤고 그것 만을 믿으며 살아왔건만 이제와서 현실은 그게 아니란다. 그건 배부른 망상에 불과하니 전부 포기하라고 한다. 늙은 부모의 기대에 찬 슬픈 눈이 '사회에 순응하며 살으라'고 가르친다. 자꾸 나빠지는 현실이 억울하고 끔찍하다. 이 곳을 떠나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딘가로 도망치고 싶다. 그래서 나는 무엇 하나 포기하지 않아도 인간으로서 떳떳하게 살아가는 것이 가능한 나라로 떠나기를 결심했다. 가난하면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만 하는 이 지긋지긋한 한국이라는 나라와, 늙은 부모로부터 영영 도망치고 싶어졌다, 될 수 있는 한 아주 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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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카로 산 촛불이 안 꺼짐.